[보이차 실전 감평-4]
보이차의 선택, 구매에 있어서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노차입니다.
후발효 차의 특성 상 보이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공통된 로망이 있다면 그건 노차를 마시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시장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아 늘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신차를 사서 20년 이상 보관하며 익기를 기다린다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생차를 저장하시는 분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못 먹으면 자식에게 물려주면 되죠!"라고.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부모들이 자식에 대해 갖는 각별한 [해주기 내지는 물려주기 본능]이 보이차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자주 절감하게 됩니다. 이유는 아마도 보이차가 단순히 마시는 기호 식품의 범주를 뛰어 넘어 재산적 가치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론이 좀 길었나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최근, 중국의 저명한 보이차 전문가분이 보내주신 샘플입니다. 90년 대 중반 차라고 적어 보냈는데, 名과 實이 너무 달라 적잖이 실망을 하고선 공부 삼아 한 번 올려 봅니다. 처음 병면에서 올라오는 향부터가 썩 그리 좋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습향이 좀 남아 있는 편인데 한 마디로 습창차임에 분명합니다.
그래도 오랜 기간 거풍을 잘 해서인지 세다(洗茶) 한 번 하고 나니 습향은 빠지네요. 서너 차례 우려낸 후부터는 마시는 데 큰 거부감도 거의 없구요. 정상적인 노차완 달리 단지 좀 길게 우리면 고미가 아직 상당히 느껴집니다.
찻물은 거의 30년 이상 건창 발효한 노차의 수준이고 맛도 제법 진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잔을 떼고 난 뒤에도 입술에까지 단맛이 제법 남습니다. 이런 경우를 당하면 보이차는 정말 자질이 좋은 차임을 또 한 번 절감합니다. 이런 노차의 필은 위 사진 상에서 진하게 갈변된 모습을 보여주는 엽저들에서 나오는 맛이지요. 물론 얘들은 정상적인 후발효가 아니라 습창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맛이기는 하지만요. 어제 제가 쓴 글에서 “탕색은 발효도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있지만 차의 품질을 확정지을 결정적 단서가 못 된다.”고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따라서 탕색은 보여 드릴 필요가 없어서 생략합니다. 앞으로 탕색은 수사의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경우에만 보여드릴 겁니다. 물론 이차의 탕색도 훌륭한 비쥬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를 마셔보고 난 후 엽저를 들여다보니 위에서 느낀 문제점들의 원인이 다 드러나는군요. 아랫쪽에 가장 밝게 보이는 젊은 엽저들은 2~3년 정도 밖에 안 된 차의 엽저로 보입니다. 길게 우릴 때 강한 고미(苦味)를 내던 놈들이군요!
갈변된 엽저들도 찻잎의 등급 및 긴압된 병차 내에서의 자신이 있던 위치에 따라 그 갈변 정도가 각기 달라 보이는군요!
이게 습창차의 특징입니다. 습창 시 조작적으로 가해지는 열과 습도가 긴압된 차의 모든 위치까지 100% 동일하게 전달될 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의 차를 우렸음에도 ‘한 지붕 세 가족’처럼 갈변도가 다른 엽저가 발견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마치 30년을 뛰어넘는 세대가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보여주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보는 느낌입니다.
이런 차들은 진기(나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판단의 근거는 가장 젊은 잎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차의 경우 2~3년 정도의 청병을 습창에서 조작하여 20년 된 노차라고 변장시킨 경우에 해당 됩니다.
정확한 품명을 위해서는 엽저를 살피고 합리적으로 분석해 는 내공을 길러야합니다.
엽저는 보이차의 탄생에서 성장, 제작, 보관 과정까지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는 칩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