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는 일은 因緣입니다.
수 백 년 전 雲南 어듸메에 이름 모를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후 그 차나무에서 잎을 따 정성껏 차를 만들었을 그 인연들을 생각하면서 차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 것 하나 그 맛이 예사로운 것이 없습니다.
주말 이틀 동안 찾아주신 분들과 마신 인연의 흔적들..이 친구들은 비록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더라도 내 집 마당에 있는 나무 밑 어디쯤 인연 닿는 곳에 뿌려져 자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침이면 볼 붉은 새악시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또 다른 인연을 준비합니다. 자연이 만들고 세월이 빚어 준 인연이 그윽한 향과 맛으로 매일 나를 전율케 합니다. 그리고선 아사코와의 짧은 만남처럼 내 가슴 속에 진한 그리움을 남긴 채 자연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한 인연을 떠나 보내는 '찬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10 수 년 전 시솽반나의 어느 여인이 고운 손으로 찻잎을 따고 빚었을 [90년 포랑고수차]가 자사호 안에 살포시 입궁합니다. 순간, 이별의 아쉬움도 잠시 또 다른 만남에 마음이 설래어 옵니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난 보는 茶마다 마음을 빼앗기는, 타고난 茶람둥이(?)인가봅니다. 찻잔 속에서 어느덧 성숙한 여인의 농염한 미소로 다가오는 천년의 향기...인연의 극치입니다.
會者定離...우리는 만남의 기쁨을 알기에 두려움 없이 이별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시인 이형기는 그의 시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는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엽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다른 인연에 설래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는 일상을 매일 반복합니다.
茶와의 아름다운 인연이 있고 그 인연 따라 맺어진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인연이 있다면 비록 布衣之士로 산들 더 바랄 게 무에 있겠습니까?
十年(십년)을 經營(경영)하여 草廬三間(초려삼간) 지여 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淸風(청풍) 한 간 맛져 두고
江山(강산)은 들일 듸 업스니 둘러 두고 보리라
십 년이나 기초를 닦아서 보잘것없는 초가집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淸風(청풍) 한 간 맡겨 두고
江山(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병풍처럼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1493 ~ 1583)의 시조
[작품 소개]
일기일회(一期一會)-行書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인간이 태어나 다음 세상에 갈 때까지의 한 주기를 ‘일기’(一期)라 하고, ‘일회’(一會)는 한 번의 만남을 이르니 ‘일기일회’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인연이라는 뜻이니 우리에게 지금의 이 순간이 진실이고 중요하며 최선이어야 한다는 애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