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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생차로 둔갑한 노황편의 유골
제목 70년대 생차로 둔갑한 노황편의 유골
작성자 대표 관리자
  • 작성일 2017-10-24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665
  • 평점 0점

지난번에 감평했던 <80년대 후반 생차>와 함께 의뢰해온 샘플 중 오늘은 <70년대 후반 생차>라는 놈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난번엔 <80년대 후반 생차>에다 이번에는 <70년대 후반 생차>랍니다. 무슨 놈의 30~40년씩 된 노차가 초보자들의 손에 올 만큼 그리도 흔한지 일단 고개가 갸우뚱 거려질 뿐입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방도를 담은 노래를 지어 달라는 신라 35대 경덕왕의 요청에 충담사는 「안민가」의 낙구에서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라고 노래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국태민안의 요결要訣이라고 제시하는 것이지요. 이 차의 의뢰인이 주신 정보에 의하면 지난번 품했던 80년대 후반 생차와 구입처가 동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보이차 시장을 정화하고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꿈을 실현코자 하는 제 본분에만 충실코자 그 이상의 정보는 굳이 묻지도 듣지도 않았으니 시방부터 저는 오직 차의 내용 확인에만 집중해 보겠습니다.



사진 속 내용물이 무엇으로 보이나요? 약 10g 정도의 샘플에서 눈에 띄게 양이 많은 이놈들을 골라서 찍어 봤는데 마치 한천寒天의 원료로 쓰이는 우뭇가사리를 말린 모습입니다. 어릴 적 시골집 한옥 대청마루의 회벽을 바를 때, 말린 우뭇가사리를 끓인 물에 석회와 선박용 폐 밧줄을 풀어 얻은 마닐라삼을 괴어 회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증발시킨 말린 우뭇가사리는 무척 가볍습니다. 70년대 후반 생차에서 골라낸 이놈들도 일반 찻잎에 비해 비교도 안 될 만큼 가볍습니다. 절대 평범한 생차의 잎이 아니죠. 여기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수상하다는 의미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혹 한눈에 알아보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림에 보이는 놈은 숙차 발효인 악퇴 과정에 나타나는 노황편의 유골입니다. 악퇴 발효 중에는 쌓아둔 찻잎들에서 생기는 퇴온에 의해 찻잎의 표면을 구성하는 팩틴질 등이 녹아내립니다. 이렇게 녹아내린 놈들은 아래로 흘러내려 맨 아래쪽의 바닥에 위치한 찻잎에 엉겨 덩어리 형태의 노차두老茶頭를 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찻잎의 원형에는 손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쇠한 잎인 노황편은 유독 세포조직이 약해 다른 등급의 찻잎처럼 원형이 유지 되지 않고 잎맥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다 녹아서 사라지고 그림에서처럼 유골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한 눈에 알아보고 저놈들만 골라내 본 겁니다.



노황편의 유골이 맞는지를 증명해 드릴까요? 저놈들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노황편 특유의 향이 살아 올라옵니다. 단지 이놈은 설상가상으로 보관 환경까지 좋지 않아 통풍이 잘 되지 않은 광 속에 오래 방치된 흔적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마실 가치가 없는 놈이긴 합니다만. 사진은 유골을 우린 후의 엽저입니다. 마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그물처럼 잎맥의 잔해만 남아 있죠? 이렇듯 명백한 숙차가 70년대의 생차로 팔리고 있다니 개탄스러운 현실입니다. 예전에 명나라 때의 차나 청나라 때의 차라고 들여와 유통되는 놈들의 정체가 모두 숙차라는 사실을 제가 밝혀냈을 때보다 그 허탈함이 유독 더 크게 느껴지는 놈입니다. 선농단에 위치한 성차사의 북창 너머로 굵은 장맛비에 가려진 삼각산의 기운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북창이 맑다커늘 우장 업시 길을 난이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마잣시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렇듯 흉측한 차를 앞에 두고서, 기생 한우寒雨를 희롱하던 임제의 풍류는 차마 즐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고은 시인의 「눈길」에서처럼 장맛비에 의해, 조작 뒤에 가려진 모든 어두운 것들의 모든 실체가 밝혀지고 탐욕으로 오염된 시장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할 뿐입니다. 이글을 보고 노황편의 특성을 경험하고 싶으시면 선농단 성차사로 달려오십시오. 선농단은 조선시대에 임금이 친히 행차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는 곳입니다. 제가 앉아 매일 찻잎과 씨름하는 자리가 바로 옛적에 임금의 일산日傘이 세워져 있던 곳입니다. 물론 제 자리 주위엔 세자를 비롯해 삼사三司의 수장들과 六朝의 대신들이 즐비하게 서있었지요. 한 마디로 준엄한 법이 살아 있고 그 권위가 집행되는 무서운 곳입니다.

옛날, 요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임금의 자리를 넘겨주려 하자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여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었고, 마침 소를 끌고 온 소보巢父는 이를 보고 더러운 귀를 씻어낸 물을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소를 데리고 상류 쪽으로 가서 물을 먹였다지요. 보이차를 의뢰받아 감평 하다 보면 참으로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경우를 무수히 겪게 됩니다. 특히 그 대상이 노차일 때는 그 심각성이 도가 지나친 경우가 허다합니다. 소보와 허유로 살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번민이 늘 떠날 새가 없는 것이 눈앞의 현실입니다.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조작을 자행하는 사람들과 죄의식 없이 감언이설로 혹세무민해 이를 판매하는 사람들... 그들과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저는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소리 없는 비명에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는지,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저문 강에 씻은 삽을 들고 오늘도 뚜벅뚜벅 愚公移山의 길을 갑니다.


남곡南谷 김중경 성차사진품보이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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